2008년 07월 06일
7.5 촛불집회: 역습의 촛불
오래간만에 다시 촛불집회에 나섰다.
7월 5일 대규모 집회에 꼭 좀 모여달라고 [100분 토론]에 까지 나오셔서 말씀하시는데
어찌 아니 나갈 수 있단 말인가.
낮 동안 줄창 비도 왔고 이래저래 동행과 약속시간도 좀 늦은 9시에 잡아 놓은 터라
느즈막히 출발하여 명동에 도착, 시청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시청방면으로 향하던 도중 명동을 향해 가는 시위대와 마주쳤다.
- 가두시위 시작했나. 생각보다는 규모가 적은데...
라고 생각한 순간 시청역과 그 너머에 거대한 줄기를 이룬 사람들의 행렬을 보고
아까 본 그 시위대는 작은 가지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았다.
천막들이 다 강제철거 되었던 서울광장에는 다시 익숙한 천막들과 보도진들이 자리해 있었고
시청광장 너머 대로에는 광화문에서부터 숭례문까지 사람들이 거대한 흐름을 이루어
말 그대로 흘러가고 있던 중이었다.
그리고 여느때와 달리 사람들의 머릿수 만큼이나 많아 보인 깃발들도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깃발들이 많이 휘날리던 때가 있었던가...
시작도 안 보이고 끝도 안 보이는 행렬은 약속장소에서 동행과 만나 다른 동행을 기다리는 수 십 분 동안
줄기차게 끊임 없이(질려버릴 정도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 많은 인파는 거의 지난 6월 10일의 대규모 집회 때에 육박하는 수준일거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기사를 보니 경찰추산 5만명이라는 것으로 미루어 한 50만명은 넘은 것 같다.)
우리는 행렬의 후미에 붙었다.
시위 행렬은 시청을 지나 숭례문 방면으로 향했고 남대문시장을 경유하여
명동 중앙 우체국 앞을 돌아 우측 차선을 꽉 메우고 종각을 향해 나아갔다.
비가 온 뒤라 공기가 습하고 바람도 안 분 탓도 있었겠지만
사람이 워낙 많았던지 공기중에 사람들의 땀냄새가 베어 있었다.
명동을 지나칠 때 눈에 익은 모습이 보였다.
브이 포 벤데타 가면과 코스츔을 한 수십명의 사람들이 이동중이었다.
듣기로는 DP에서 모인 사람들이라는데...
[브이 포 벤데타]가 어떤 영화인지 모르는 사람은 이번 기회에 꼭 보도록 하자.
지금 우리나라 시국에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영화다.
종각에 도착한 시위대는 잠시 정체했다.
마지막으로 합류하기로 한 동행을 기다리기 위해 근처의 빈대떡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뒤늦게 마지막 동행이 도착했고 타이밍 좋게 음식도 나와서
전을 안주삼아 동동주 한 잔씩 걸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나와보니 시위대는 흩어지거나 다른 곳으로 장소를 옮긴 것 같았다.
종각에서 광화문 쪽으로 이동했는데 차벽으로 막혀있더라.
아마 시위대가 종각 근방에서 정체했던 것도 이 차벽에 진출로가 막혔기 때문인 것 같았다.
종각 - 광화문(차벽) - 청계천 - 시청 에 걸쳐 오는 동안
사람들은 저마다 작은 그룹을 이루어 앉아 쉬기도 하고 이야기도 하고
구호를 외치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오래간만에 보는 익숙한 모습이고 한동안 보기 어려웠던 즐거운 분위기다.
차벽 앞에는 사람들이 띠를 이루고 앉아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경찰차량에 대한
폭력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분위기는 예전과 다르게 많이 바뀌어 차에 달려들어 해꼬지 하려는 사람도 없었고
이미 사람들의 관심은 경찰차벽에서는 멀어진 것 같았다.
이것은 사제단을 비롯한 여러 종교단체가 나선 영향도 있을 것이고
폭력을 동반한(누가 원인이건 간에) 거친 방식의 시위가 대중과 시위대 자신들에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경찰도 이전까지의 조직적인 폭력행위와 과격진압에 대한 따가운 눈총에
다시 시위대와 접촉하지 않는 방법을 선택한 것 같았다.
여러 해외 언론들이 주시하고 있고 인터넷은 물론이고 공중파에서도 그대로 방송되며
국제 인권단체까지 감시의 눈을 번뜩이고 있는데 함부로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실 시위대가 청와대로 진출할 생각이 없는 이상 경찰이 격렬하게 대응할 명분이 없으니까.)
평화와 비폭력을 되찾은 촛불집회는 다시 사람들이 웃는 장소가 되었다.
이 촛불 집회의 끝이 안 보인다.
비가 와도 계속 되고 날이 더워도 계속 되고 폭력으로 찍어 눌러도 계속 되는 질기고도 질긴...
오늘의 이 대규모 시위의 모습을 보고 이명박과 정부와 한나라당과 조중동은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들은 아마 내심 오늘의 시위가 별 효과 없기를 바랐을 것이다.
흐지부지하게 흐트러지길 바랐을 것이다.
게다가 천운도 따라서 날씨도 더운데 비까지 내려주셨으니까.
하지만 오히려 천운은 촛불에 있었다고 봐야할 것이다.
집회가 피크 타임에 접어들면서 비가 딱 그쳤으니까.
그 덕분에 나같이 비오면 안 나가는 사람들까지 거리로 쏟아져 나오지 않았겠나.
타이밍도 참 좋다.
자정 쯤 시위대에서 떨어져 나와 집으로 왔다.
이후 새벽동안 별 다른 일 없이 이렇게 조용하고 즐거운 분위기가 이어졌으면.
그래서 내일 아침 뉴스를 이명박 앞에 당당하게 보여줬으면 좋겠다.
# by | 2008/07/06 02:13 | 이슈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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